1784
이승훈 영세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의 북당(北堂)에서 예수회 그라몽(J.J. de Grammont, 梁棟材)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다.
1785
1785년[을사년] '추조'(형조(刑曹)의 이칭)의 금리(禁吏)들이 서울 명례방(明禮坊)의 장악원(掌樂院) 인근에 살던 김범우(金範禹)의 집에서 열린 신앙 모임을 적발하여 성상, 서적 등을 압수한 사건이다.
1786
이승훈 등이 사제단(司祭團)을 구성하고 미사와 성사를 거행하다. 신자가 사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알게 되어 1787년 초에 가성직제도를 중단하다.
1787
이승훈, 정약용(丁若鏞) 등이 서울 반촌(泮村)에 있는 김석태(金石太)의 집에서 천주교 서적을 강습하다가 발각된 사건으로, 척사(斥邪)운동의 계기가 되다.
1789
조선 교회의 밀사 윤유일(尹有一)이 북경의 천주당을 방문하여 서양인 선교사들에게 조선 신자들의 서한을 전달하고 조선 천주교회의 설립 소식을 알리다.
1790
윤유일이 북경을 방문하여 선교사들에게 조선 신자들의 서한을 전달하다. 북경교구장 구베아(A. de Gouvea, 湯士選) 주교는 윤유일에게 조선 교회에 성직자 파견을 약속하고 조상 제사 금지를 지시하다.
1791
구베아 주교가 파견한 중국인 레메디오스(Remedios, 吳) 신부가 조선 입국을 시도하다. 그러나 안내를 담당할 조선 신자들을 만나지 못해 입국에 실패하다.
1791.12.08
전라도 진산의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이 교회의 조상 제사 금령에 따라 신주(神主)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한 일로 전주에서 순교하다.